하윤우의 첫인상
[윤련]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쯤은. 이 세상은 망한 지 오래라, 인성이고 뭐고 다 버리고 사는 새끼들만 한가득이었으니까. 나 또한 그러했고. 그거에 대해서 욕하려는 건 아니다. 아니, 욕의 대상이라면 오히려 바보 같은 나 자신일까. 배신당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나 자신. 대체 왜? 무엇을 위해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명예로운 일이라고 해도- 이제는 의미없다는 걸 알지 않나? 그걸 모르는 바보도 아니면서 왜 쓰러진 사람은 지나치지 못하고,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식량을 내어주게 되는 걸까. 양심이 남은 것도 아니면서. 이제는 쓸모도 없는 '위선'이라도 떨고 싶었던 걸까. 이번에는 그냥 무시해야지, 이번만큼은 나부터 생각해야지, 이번에는, 이번에는, 이번에는. 몇 번의 후회가 지나갔는지는 모른다.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 건 아니니 상관없나. 그렇게 생각하며 흘러가는 하루하루였다.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가 밤 사이에 훔쳐가는 이가 있어도 새로 구하면 그만이었고, 도운 사람이 감염자일 경우에는 사살하면 그만이었다. 사람이었던 자를 죽이는 것에서 비롯되는 죄책감? 그런 걸 지금껏 가지고 있었다면 살아남지도 못했겠지. 이제는 호의를 베풀어도 보답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물에서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사람들만 만났으니까. 그냥 적당히 식량이나 가지고 도망가면 다행이라는 생각이었지. 그 남자를 만난 날도 흔한 날 중 하나였다. 그랬을 것이다.
 
  이름이 '하윤우'라던 남자는 마트에서 만났다. 언제나처럼 식량을 추가적으로 확보해두기 위해 들렀던 마트, 그 안에서 발견한 혼자서는 좀비 한 마리도 해치우지 못할 것처럼 생긴 남자. 육체파보다는 지략파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사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온 건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야, 인상이 좋은 편도 아니었으니까. 종종 마주치는 생존자 무리들은  - 비록 싸우는 모습을 더 많이 보기는 했지만 -  나름 인성을 봤다. 저렇게 무감정하고 무기력해보이는 남자는 결코 그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을 거다. 말투도 퉁명스러웠으니까. 식량을 나누어 주고,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물어본 건 그래서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뒤통수를 치고 식량을 가져가더라도 아무 신경 쓰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겉으로는 무방비하게, 속으로는 언제든 무기를 잡을 준비를 한 채 잠들었던 첫 날 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식량을 들고 튀는 밤. 의외로 그 남자는 도망가지 않았다. 혼자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그런 것이었을까? 이유는 모른다. 남의 마음을 파악하는 능력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호구처럼 뭐든 다 주고 살지도 않았겠지.

  그렇다고 기대를 품은 것은 아니었다. '기대'와 같은 같잖은 감정을 가지기에는 지금까지 겪어왔던 일들이 지나치게 많았으니까. 이러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러니 그 사람에게는 상당히 생각없이 살아가는 머리가 꽃밭인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몸이 좋으면 머리가 고생을 하지 않는다'의 표본 마냥 살았으니 더 그럴 것이었다.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생각없이 살아가는 편은 아니었지만. 사실 상관없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보든 내가 알 바는 아니었으니까.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내가 그 사람의 자유 의지를 빼앗고 억압한 것도 아니고, 떠나고 싶을 때는 언제든 떠나도 된다고 누누이 얘기해오곤 했으니까. 언제나 툴툴거리고 짜증을 내도 나를 따라온 건 그 사람 본인의 선택이었다. 서로를 믿는 듯 믿지 않고, 의지하는 듯 의지하지 않은 채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기묘한 동행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나흘이 되고, 어느덧 일주일이 지날 무렵에는 약간의 신뢰가 싹텄다. 그래도 이 사람은, 나를 배신하지 않고 계속 곁을 지킬 것이라는 약간의 믿음, 아주 미약한 기대. 그러한 것이 생기고 나서야 그 사람을 속에서도 '하윤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아니라 "하윤우"라는 한 명의 사람으로 인식된 날. 그건 우리가 만난 지 일주일이 지난 날이었다.

  속내가 변했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 말도, 행동도. 속내가 바뀐 것일 뿐, 겉으로 보이는 것이 바뀔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 정도의 연기도 못할 정도라면 이 미쳐돌아가는 사회에서 살아남지도 못했을 거다. 생각하는 것이 어떻든 간에 겉으로는 가식이라도 떨어야 생존자들끼리 원만하게 교류할 수 있는 사회가 지금이니까. 속으로는 다 서로의 식량을, 전투력을 탐내고 있었음에도 그를 티내지 않고 겉으로는 웃으며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는 행위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 번이나 했던가. 그에 비하면 '하윤우'라는 한 남자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 것은 어려울 것도 없었다. 평소처럼 해맑게 웃고, 전략을 세우기보다는 몸부터 앞서 전투를 하고. 달라진 점이라면 호칭 하나일까. '하윤우 씨'라는 딱딱하고 정중한 호칭에서 '윤우 오빠'라는 친근감 있는 호칭으로의 변화. 겉으로 내세운 핑계는 그제서야 나이를 알게 되어서이지만, 나이를 물어볼 생각이 든 것도 결국 경계심을 누그러트렸기 때문이었으니까. 머리가 좋은 하윤우라면 눈치를 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안다고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라 더 성의 있는 변명을 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날 경계하고 있었던 건 하윤우도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이 시대에 누군가를 처음부터 믿는다는 것은 죽음에 빠르게 가까워지는 방법에 불과하다는 건, 이제는 유명한 격언이지 않던가?

  '하윤우'라는 사람의 첫인상이 현인상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곁에 있는 것이 의외일 뿐이지. 그래도 지금은 믿고 있는 동료이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지적해주는 사람이다. 몸을 두 번 쓸 것을 한 번만 쓰도록 도와주는 정도랄까. 그가 없었다면 내 체력 소모량은 지금의 두 배 이상이었을 것이고, 위험한 상황에 상당히 많이 마주쳤을 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니까. 지금은 하늘이 내려준 보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베풀고 살아온 호의에 대한 보답. 나에게 딱까지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잘 맞는 파트너. 미쳐돌아가는 세상이 언제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둘 중 한 명이 감염되지 않는다면 끝까지 같이 있지 않을까. 뭐, 그 쪽이 감염된다면... 그냥 묶은 채 끌고 다닐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이 노트, 읽을 거 다 알고 있으니까.